영성의 향기

축 부활

할미 아녜스 2007. 4. 8. 21:06
알렐루야~~알렐루야~~~ 예수 부활 하셨네~~~ 부활하신 예수님의 평화와 은총이 모든 분들 가정에 함께 하시길 빕니다.
    우리는 어두운 밤에 촛불을 밝혀 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1,4)는 요한복음서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약한 촛불 한 자루를 우리는 손에 들고, 우리 앞에 가냘프게 그러나 확실하게 밝혀진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라는 사실을 생각했다. 부활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님을 하느님이 당신 안에 살려 놓으셨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부활은 몇 사람을 놀라게 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아버지의 일을 죽기까지 실천한 한 생명을 하느님이 당신 안에 거두어들이셨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 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분을 거두어 당신 안에 살려 놓으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하느님과 다른 하느님을 가르친 다고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였습니다. 유대인 군중은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 이스라엘의 국권을 회복하여 만방을 다스리게 하는, 화려하고 막강한 메시아가 아니라고 그들 지도자들의 미움과 죽임에 동조하였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로마 제국이 식민지 팔레스티나를 통치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예수라는 인물이라 판단하여, 유대교 기득권 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음 앞에 그분을 버려 두고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쳤던 하느님은 없다고, 사람들은 그분을 비웃었고 조롱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불렀지만, 하느님은 침묵을 깨고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큰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 당하는 죄수의 한 사람이 되어, 그분은 고독 가운데 죽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기옵니다”(루가 23,46). 그리고 그분은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하느님만이 당신의 미래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그분은 죽어 가셨습니다. 하느님은 과연 그분의 미래로 살아 계셨습니다. 인간이면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심연을 넘어서 예수님은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외면하지 못하는 죽음입니다. 이 세상을 등지고 외계인(外界人)이 되어서 살 수도 없고, 이 세상과 담을 쌓고 천사와 같이 살 수도 없습니다. 이 세상을 버렸노라고 말하기에는 이 세상에 너무나 얽혀서 살아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부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의 촛불이 들려졌습니다. 우리는 세례 받을 때 이 촛불을 받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빛으로 살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장차 죽으면 사람들이 우리의 주검 앞에 제일 먼저 촛불 하나를 밝혀 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을 좇아가라는 말입니다. 지상적 인간 조건을 하나도 외면하지 못하고, 우리는 땅에 붙어서 삽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듯이, 울며 웃으며 우리는 땅에서 삽니다. 그러나 오늘 밤 우리 손에는 촛불 한 자루가 들려 있습니다. 그냥 웃고 그냥 울며 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우리의 삶 안에 밝히고 살겠다는 말입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복음서의 이 말씀을 고백하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었던 생명, 그분이 실천하신 생명이 하느님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대의 죄는 용서 받았습니다”라고 하시던 그분의 말씀이 하느님의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용서하고 살리시는 하느님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죄인이라 낙인찍은 여인에게도(루가 7,48), 죄 때문에 하느님이 버리셨다고 믿던 중풍병자에게도(마르 2,5),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대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악하기에 하느님도 악하다고 상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심술궂기에 하느님도 심술궂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선하고, 불쌍히 여기신다고 가르치면서, 그 선하심과 그 불쌍히 여기심을 실천하셨습니다.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지혜를 자랑하지도 않으셨고, 당신의 권위를 과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과대 포장하고 과시하면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당신 스스로에 대해 언급하신, 유일한 말씀은 “나는 그대들 가운데 섬기는 사람으로 있습니다”(루가 22,27)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서, 측은히 여겨서 섬기신 분이었습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이제 죽음은 절망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미움도, 우리의 실패도, 모든 사람이 우리를 외면하기에 겪는 우리의 고독도, 이제 우리에게는 절망이 아닙니다.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면, 그런 것들 안에 새로운 생명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겪으셨던 미움이고, 실패고, 고독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그것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와 함께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6,8) 길입니다. 그런 것을 넘어서 예수님은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만물이 뿌리박은 이 땅, 우리가 장차 묻힐 이 땅도, 이제 그리스도의 빛을 간직하고 있도록 했다는 고백입니다. 용서가 실천되는 땅에 그 빛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불행을 퇴치하는 섬김이 실천되는 땅에 그 빛이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땅에 그 빛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흔적들을 간직한 땅입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이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은 사라지고 새로운 삶이 발생합니다. 미움이 사라지고 사랑이 발생합니다. 자기만이 소중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발생합니다. 실패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고, 고독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함께 계시는 순간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 안에 스며들고 그 빛으로 새로운 실천이 발생하면서 보이는 새로움입니다. 어둠의 역사 안에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지금부터 촛불을 밝혀 들고 우리가 세례 때 했던 약속을 새롭게 합시다. 우리 안에 또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안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살아 계실 것을 기도 드립시다. 우리가 사는 역사의 어둠 안에 그분이 빛으로 함께 계실 것을 기도 드립시다............ [말씀자료 : 서공석 신부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원 역사의 절정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