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수련(睡蓮)과 배려(配慮)가 넉넉한 그녀 이야기

할미 아녜스 2007. 6. 8. 23:20


수련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곳은 문수 축구경기장 호수이다, 
이 곳에 수련이 아름답게 핀다는 사실을 
안것은 재 작년 부터이다. 

재 작년 이 맘때, 
배려심(配慮心) 많은 천사가 
이른 아침 시간에 전화를 해 왔다.  
외출 준비를 하라고....
느닺없이 붙들려 온 곳이 이곳 호반광장
수련이 아침 이슬을 먹음고 활짝 피어나는 광경이었다.
내 동공(눈)이 확 열리는것이  
수련의 아름다운 자태에 홀딱 반했지 아마...ㅎㅎ

그 후 작년 이 맘때, 
나 혼자 수련이 피었을까? 하는 바램이였는데...
그런데 그 날은 헛걸음을 하고 돌아갔다.
수련은 아침에 깨어나 낮에 활짝 피었다가 
저녁이면 물속으로 들어가 잠을 자는 놈이기 때문에...

그리고 몇일 후 은근 슬쩍 또 왔었다.
정말 내 눈이 휘둥그레 졌는데...
그건 수련꽃을 보고서가 아니라 
수련과 함께 자리한 부들 때문이었다.
부들이 얼마나 많든지 
수련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 호수에는 부들과 수련 또, 연꽃 까지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그 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는데 
부들사이로 삐져나온 수련꽃을 디카에 담으려고 
우산까지 내 던지고 디카에 수련 한송이라도 
제대로 잡아보려 얼마나 애를 썼든지...
지금 생각하면 참말로 제대로 미쳐 있었제...ㅋㅋ

부들 때문에 숨이 막힐것 같은 환경속에서도 
수련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려는 듯,
그런 수련이 안스러워 
나는 비를 맞는것 조차 의식하지 못한채
수련과의 은밀한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
정신을 차렸을 땐, 
옷은 흠뻑 젖어 한기를 느꼈고
주위엔 사람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완전 미친녀자....ㅋㅋ

그 때 생각 난 사람이 그 천사였다
폰을 열고 그 천사에게 
"나 여기 수련보러 왔다" 했을 뿐인데
그 천사는 폰에 묻은 내 입김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해 맑은 미소를 머금고 달려와 주었다.
활짝핀 수련꽃 보다 더 활짝 핀 웃음으로...

비에 젖은 나에게 우산을 바쳐주는 그 녀의 손길에서 
나는 그 천사의 향기를 맡았다.
남을 배려한다는건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행할 수 없는 것이란걸...
분명 그 천사의 향기는 남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향기였다는걸...

그 아침 시간에 자기의 할일이 왜 없었겠는가?
이 각박한 세상에 남을 배려한다는건 
손해보는 일이고 자신을 낮추어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일이다. 
나는 그게 잘 안되는데!

나는 입으로 배려하고 입으로 사랑한다...
실천에 들어가면 괜히 내 주위가 보이고
내 자존심이 보이고 내 욕심이 보여서...
이웃을 내 몸같이가 아니고 
이웃은 그냥 이웃일 뿐인데....

이 늦은 밤 수련을 정리 하면서 
그 천사가 무척 그립다...
그 천사는 지금 많이 아프다...
아마 이 시간에도 심한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은 한없이 안스럽는데...
표현이 중요하지 않기에 표현을 해 본적은 없다 만
기도한다....

정확한 병명은 기억에 없다만,
내 추측으로 "손목 터널 증후군"이 아닌가?
아니면 이름도 없는 고약한 병이든지...
지난해 가을에 서울의 모 병원에서 손바닥을 수술했다.
수술한 후 손바닥 중앙에 솟아 올라 온것이 
삭지 않고 계속 통증이 심해 
얼마전에 또 다시 재 수술을 했다 
봉긋이 솟은 봉우리는 없어져 가는데 
통증은 여전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나는 고통중에 있는 그 천사를 위해 
행한게 아무것도 없다.
입으로만 하는 기도, 손가락을 사용한 문자 메세지...
주부가 없는 그 가정의 가족들에게 
밑반찬 한가지도 만들어 주질 못했으니...

받은 은혜는 태산 같은데...
남을 위한 배려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것 같애 
이것도 하늘이 내려줘야만 할 수 있나 봐!
변명인지, 용기가 없음인지? 
나의 나약함인지?
순수한 사랑이 없음인지?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사랑을 알고 있는건 아닌지?
이럴 땐 나 자신이 참 한심함을 뼈저리게 느끼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내가 언제! 하고 잊어버리니....
이것이 한심함의 작태가 아닌가?

금년엔 두 차례 이 호수에서 수련을 살펴봤다. 
첫 날의 방문 때는 봉오리가 갓 올라오는 모습이였는데...
두 번째 방문일 때는 활짝 핀 모습으로 맞아 주었다.
다른 곳은 물이 말라 제대로 핀 수련을 보기 힘든데 
다행 스럽게도 이 곳 호수는 물걱정은 없는 곳이라 
제대로 핀 수련을 볼수 있어 
지나간 몇 가지의 추억을 더듬어 본다.

오랫만에 단비가 오는것 같더니 밖앗이 조용하다.
내일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그 천사 에게 
문자라도 띄워야 겠다.
맘이 무겁다.....
꽃 만 정리해 올리려 했는데...
너스레가 너무 길었다...

수련 꽃 같이 맑고 영롱한 영혼을 가진 천사에게
이 수련을...
그 천사도 좋아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