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아지매, 여거가 다 아지매 집인교!
할미 아녜스
2005. 9. 19. 01:54

여거가 다 아지매 집인교!! 추석날 문득, 까마득한 그 때의 기억이 왜 뜨오르는지...ㅎㅎㅎ 나의 과거! 뭔가 좀 거창한게 나왔으면 하고 지달리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는디...? 지금 부터 30년 전...아마 75년도 초 여름이였을거야 4살백이 딸 아이는 걸리고 두살백이 아들은 등에 업고 뿌연 흙먼지를 날리면 찾아 온곳이 이곳 울산, 그 당시엔 나에게 울산은 초행길이였고 골짜기 골짜기 어찌나 산골이든지?? 지금의 거창한 울산속의 "현대 특별시"라고 불리던 그 곳, 현대 중공업을 중심으로 현대 가족이 모여사는 닭장 같은 현대의 사택촌이였다 입사 한지 얼마되지 않아 사택이 나왔다는 편지를 받고,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이 나를 들뜨게 했지! 또 찬찬치 못하고 덜렁거린 내 성격 땜에 빚어진 그 날의 웃지못할 아니 눈물로 세수를 했었는데 추억이 돼뿐네, 울 남편은 하도 자상해갔고??? "사택이 나왔으니 빨리 이사온나" "울산에서 한참 더 들어오모 서부동 명덕이라카는 동네가 있거든 그~ 명덕 아파트 104호다" 내 기억으로는 주소라고 알려준 전부일것이다...하도 자상시러버서..?? 이 편지 자랑을 그 때 쥔집 할머니 한테 했더니 빨리 신랑한테 가라네 셋방을 내 놓기가 바쁘게 나갔고 방을 빼주야겠고 해서 서둘러 이삿짐을 챙겼다 이삿짐 트럭 아자씨왈 "부산서 울산까지 한 200리 될거요" 근데 뭔넘의 200리가 가도가도 끝이 없다 작은 동네같은 시가지를 벗어나 얼마를 달렸는지? 듬성듬성 있는 초가집도 잘 보이지 않는다 흙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얼마를 달려서 고개하나 넘었더니 (지금의 남목고개) 확 터인 바다가 보인다.(지금의 남목) 현재는 그 때의 바닷물은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은 그 장소가 "한국 프렌지" 와 "현대 공고" 또 뭔 공장이 또 있지..? 그 때 해변도로 였는데 바닷물이 행길까지 넘실거릴 정도였다. 바다를 끼고 한참을 가서야 도착한 곳, 서부동(명덕이라는 동네), 지금은 꽤나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그 당시 사택은 5층짜리였다. 이 등신이 알고 있는 주소는 104호 라는 것 뿐이니... 아파트가 3동씩 2줄 6동이 서 있는데 도대체 몇동에 104호라는 겐지? 이삿짐 트럭을 아파트 앞에 세워두고 신랑찾아 현대중공업 정문까지 아이를 업고, 걸리고 뛰어야 했으니 이삿짐을 싣고 온 트럭 기사 아저씨의 투덜거리는 그 소리...... "아지매, 여거가 다 아지매 집인교?" 당시 정문에서 면회신청을 하고 사람이 나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면회신청을 했더니 맙소사 "현장에 나갔어요" 작은 창문사이로 잡아든 수화기 저쪽에서 낮선 남자 목소리에 그 만 눈물이 왈칵 솟구처 엉엉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내 울음소리에 등에 업힌 놈도 앙앙.... 바지 자락을 붙잡고 선 딸애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경비실에 계신분들이 밖으로 나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보는데... 그 때는 부끄러운줄도 모르겠고 누군가가 내 남편에게 달려가 주기만 바랐다... 선량한 분의 배려로 현장까지 가서 남편을 데리고 나왔는데... 남편을 보는 순간 눈물콧물을 남편에 품에서 쏟았는지 아이들까지 앙앙댔으니... 암담했던 순간에 남편은 바로 구세주였다 남편과 해로 한지가 한 35~6년 됐는데 그 때 만큼 남편의 소중함 을 느낀적이 별로 없는것 같다... 아파트로 와서 짐을 부리는데 트럭기사 아자씨는 내내 투덜거리는 바람에... "오늘 중으로 울집에 다 갔소" 하는 통에 이싯짐은 마당에 내리기만 했던.... 그 때의 추억은 아름다웠다 05. 9. 18. 추석날. 이삿짐 정리는 다음에 해야것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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