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덜렁이 아지매의 정착생활
할미 아녜스
2005. 9. 21. 16:33

이삿짐 2탄 우여곡절 끝에 나는 덜렁이 아지매라는 타이틀을 달고 울산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이삿짐을 끌어다 대충 놓을 자리에 놓고 나니 몸은 이미 절여 논 고들빼기가 되었다. 신혼시절의 단칸방은 그야말로 단칸이였거든.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손바닥만한 부엌, 부엌과 같이 붙은 마루, 마루라기 보다 방으로 들어가기 위한 디딤돌 역활을 할 뿐이지만, 지금은 아마 내 엉덩이 칫수에 맞은 공간일거야.....그리고 방, 그속에서 남매를 낳고 걸음마를 가르치고...ㅎㅎㅎ 그랬던 집에서 이 사택은 대궐이였다 부엌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방이 두 개지. 화장실이 집안에 있지, 작은 쪽 마루가 있지, 내가 가장 좋아할 장독대를 밖에 만들수 있는 공간이 있지, 그 보다 더 좋은건 넓은 마당이다. 그리고 화단을 꾸밀수 있는 방 뒤의 베란다~~ 화단을 꾸미기 위해 주변의 산, (현재 울산대학병원과 바오로 성당자리) 그 때는 배 과수원 자리 인데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미 이주를 한 뒤였고 사람이 살았던 흔적, 꽃들이 있었거든 그 꽃들을 뽑아다가 나의 화단을 가꾸었는데 그러든 어느날, 현재 그자리는 현대백화점이 생겼지만 그 때는 이주하지 않은 한 채의 집이 있었다. 아마 보상이 마음에 차지않아서 버티고 있는 집이였던것 같다 그 집 앞에 웅덩이가 있고 그 웅덩이 주변에 오동통한 코스모스가 자라고 있었다 오늘 처럼 그 날도 비가 부슬부슬 뿌리고 있었는데 아이를 들쳐업고 그 코스모스를 몇포기 뽑고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주인 아짐씨의 거칠은 말씨에 나는 또 울고 말았다. 코스모스 몇 포기에 도둑누명에다 신랑한테 가자는둥, 어니없는 억지소리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는데도 그 아짐씨 기세가 어찌나 당당하든지.... 그 뒤에 그 아짐씨 명덕 시장에서 화분이랑 화초들을 갖다 파는 장사를 하셔서 그 때를 생각해서 단골이 되어 주었지만... 이렇게 작은 일에 부딪치다 보니 정이 붙질 않아서 언제 떠날까? 맨날 떠날 준비만 하는 생활을 하게 됐다 문제는 친구를 사귈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팔도 사람들이 다 모여서 어울려야 하는 곳인데... 사람들이 왜 그리도 거칠은지? 이건 말, 言語 疏通 안되는거였다 우짜다가 말을 붙이면 이건 싸움을 하자는 건지.... 한 마디로 나는 무서워서 밖앗 출입을 줄이고 말았다. 그러든 어느날, 아들이 세발 자전거를 타고 노는데 윗집 아이가 자저거를 밀어주다가 높은 옹벽아래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이가 울고 집에 왔는데.... 단순이 입술이 좀 찢어졌나 하고 세수를 시키면서 보니 입안에서 계속 피가 멎질 않았다 아이를 들쳐업고 택시를타고 시내에 있는 병원을 가는데 병원까지가 어찌 그리 멀고도 먼지... 외딴곳에 사는 외톨이라는 생각만 가득했었다 아들은 입술이 완전히 관통을하여 찢으졌는데 그 의사 젓가락 같은것을 가지고 아이의 입술을 왔다갔다 하는데 간이 다 오므러 들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그 때,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지금은 자세히 보면 훙터가 좀 보인다 만 그때는 아들 째보 만드는줄 알았다 그렇게 떠난다 갈란다 하면서 떠나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울산땅이다 지금은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아닐까 하는 할미의 생각이다 확 터인 동해 바다가 있지, 주변엔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름다운 산들이 있지, 볼걸이 먹걸이가 풍성한 곳이니까!
사진:연풍의 은티마을 연제식 신부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