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편지'

눈 오는 마을/김용택

할미 아녜스 2006. 1. 5. 23:17
저녁 눈 오는 마을에 들어서 보았느냐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마을이 조용히 그 눈을 다 맞는 
눈 오는 마을을 보았느냐 
논과 밭과 세상에 난 길이란 길들이 
마을에 들어서며 조용히 끝나고 
내가 걸어온 길도 
뒤돌아볼 것 없다 하얗게 눕는다 
이제 아무것도 더는 소용없다 돌아설 수 없는 삶이 
길 없이 내 앞에 가만히 놓인다 
저녁 하늘 가득 오는 눈이여 
가만히 눈발을 헤치고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 보이지 않은 것 하나 없다 
다만 
하늘에서 살다가 이 세상에 온 눈들이 두 눈을 감으며 
조심조심 하얀 발을 이 세상 어두운 지붕 위에 
내릴 뿐이다 
-어둠속의 횃불에서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