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연중 14주일 복음 묵상
오늘의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가거라" 제자를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당부 말씀은 "돈 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 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 1~12. 17)
대충 이러한 내용이다. 예수님은 수확 할것은 많다 하셨다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고 계신가를 본다. 아마 예수님의 구원 게시판에 나까지 포함 되어있겠지 추수때는 부지깽이도 거들면 낫다라고 하지 않던가! 선교의 어장에 거물을 던질 어부가 필요하시다는데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먹고 사는 자가 또한 그 사랑을 내 이웃에게도 퍼 주어야 되지 않을까? 미사 중에 신부님 강론을 들으면서 요렇게 머리는 굴린다.
그러나, "가거라" 하신 말씀 귀로만 듣고 텅 빈 머리로 성당을 나왔으니....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나는 부지깽이 만도 못한것 같다.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시는 당부의 말씀, 무소유(無所有)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번뇌의 시작이다. 無所有 그것은 곧 자유라고... 철처히 모든것을 버린 예수님처럼...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니! 인사, 인연을 맺지 말라시니... 무인연(無因緣) 인연도 번뇌의 시작이다. 無因緣의 자유... 아마 평화 그 자체가 아닐까! 남편 때문에...자식 때문에..형제 때문에.. 여거다가 혈연, 학연, 지연, 등등등... 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족쇄를 채우며 살아가는데 우째서 예수님은 외톨박이가 되라는 말씀인가! 그런건 아닐테고 모든것에서 이탈해야만 참 사랑을 나눌수 있기 때문이제~~ 혈연 때문에 인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할 때, 나의 애념이 그곳을 향하고 있으니 온갖 번민에 싸여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어 있으니 이러니 어찌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보일까? 大데례사 성녀는 "육신이 아쉬워 하는것에 마음쓰지 말라" 하셨는데....
"평화를 빌어 주라" 평화의 인사는 고개만 까딱했는데... 진정으로 이웃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래야 했는데 고개만 까닥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얼렁얼렁 고개만 좌 우 앞 뒤로 까닥까닥...츠암! 예수님의 사랑을 전달 할 좋은 기회를 이렇게 까닥으로 끝내다니... 진정 이웃의 감사함도 모르고 평화는 내 소유인양 낙아채고 끝냈다. 이러고도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고 성찬의 전례에서 예수님과 한 식탁에서 예수님의 몸인 영혼의 양식으로 영혼의 배를 채웠다고 할 수 있을까? 아! 예수님의 밥만 축내는 밥충이 일 뿐, "우리는 벽을 더듬는 소경처럼 되었고, 갈 길을 몰라 허둥데는 맹인이 되었다. 한낮인데도 황혼 무렵인듯 발을 헛딛기만 하는 모양이 몸은 피둥피둥 한데도 죽은 것이나 다름 없구나."(이사59.10)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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