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주 지역 가르멜 재속회 카페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영성강좌
글쓴이: wooriesarang
엘리야 신부님께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영성 강좌를
사랑하는 분의 이야기를 하시듯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기쁨으로 술~술~ 풀어가셨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며 재미있게 들은 사랑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봅니다.
성녀의 정식 호칭은 아기 예수와 성면의 데레사이며
성녀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 알랑송에서 아버지 루이 마르탱과 어머니 젤리 게랭 사이에서
9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하느님 성의에 따라 결혼한 부모아래 가족들의 모든 일상이 하느님 중심이고
기도 생활이었고 가정 생활은 신앙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생활 자체가 기도인 분위기 안에서 성녀는 자연스럽게 기도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도 이같이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자!
1888년 15세의 어린 나이로 리지외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여 사시다
1897년 9원30일 저녁 7;30경, 늘 원했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죽음을 본받아
24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녀로 시성 되었으며,
199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성녀의 영성에 영향을 미친 부분은 하느님 인식, 성덕의 보편성, 복음의 근본주의와 성모 신심이며
성녀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삶으로 표현하고 자아인식을 통하여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린이로써 아버지면서 어머니이신 사랑의 하느님을 인식하며
그분에 대한 신뢰와 의탁, 감사의 삶을 사셨다.
이는 하느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며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행했으며
어린이의 길(내려오는 영성/비움과 겸손의 길/엘리베이터)을 통해 완덕의 산에 이르렀다.
영혼이 하느님께 사랑 받고 있음을 안다면 그것이 곧 신뢰의 원천이며 영혼의 힘이다.
성녀 영성의 영향으로 모든 이는 성덕에 불리움을 받았으며 모든 사람들이 닦고있는
성덕은 동일한 것이라 선포하였고 하느님을 얼마나 찾고 맡기느냐에
완덕이 있다는 성덕의 보편성이 이루어졌다.
“어린이와 같이 되라” 는 복음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마음을 깨닫고 실천하려 했으며 신뢰와 의탁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온전히 맡기며
능력없는 사람도 할 수 있게 불러 주시는 이 길(단순함을 지향하는 어린이 길)을 걸었다.
성녀를 복음의 육화라고 한다.
성녀께 있어 성모님도 같은 의미였고 성녀의 생애를 살펴보면 중요한 모든 것이
성모님과 항상 연관이 되어있어 성모님이 성녀와 늘 함께 계셨음을 알 수 있다.
너무 작기에 올라갈 수 없는 곳에 엄마에게 올라가려는 표시만해도
부모는 가슴에 안고 올라간다며 신뢰 안에서 표시하는 충실성을 보여 주셨고
성녀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입니다"라며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나
늘 주님의 뜻을 찾으며 온전히 신뢰하고 그 품에 안겨 항상 감사하며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어린아이로 남고 싶은 어린이 영성을 사셨다.
성녀께서는 자신의 사도직을 성녀께서 하셨듯이 다른 이들에게도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작은 길을 가르치는 것이라며 세상 떠난 후에도 기도의 사도직을 실천하리라 약속하신다.
또 사도직을 실천함에 빈 손을 가져야 됨을 강조하시고 빈 손은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후에 빈손 영성으로 출발하게 된다.
성녀는 일상에서 빈손으로 끊임없는 바늘 순교를 통해 사도직을 실천했다.
작은 사랑을 주위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행할 때 바늘 순교가 된다.
숨고 숨고 또 숨어 밟아도 인식이 안 되는,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모든 시선이 하느님께 집중돼 있고 온통 주님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세상 것은 접근조차 할 수 없고 오직 신뢰 안에서 나 자신으로부터 조차 잊혀지는
모래알 영성(희생). 하느님을 사랑했기에, 온전히 의탁하고 신뢰했기에 3분에 한 번씩은
주님을 생각하며 살 수 있었다.
회헌 회칙을 어긴 적이 없으며 모든 이에게 순명함으로 가난을 실천하고
고통을 하느님께 희생으로 봉헌하며 나를 찾기보다 남을 더 배려하며,
하느님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놓으시고 평생을 하느님 현존 안에서 사셨고
세상은 유배지고 천국이 고향이라며 그리워하셨다.
예수님의 고통을 통해 많은 영혼이 구원 받는다는 성면의 고통의 가치를 인식하며
하루하루의 삶 안에서 고통을 봉헌하시고 피의 순교를 원했던 성녀는 23세 성 목요일에
각혈을 시작하셨고 호흡 곤란으로 십자가상의 예수님의 고통을 당신 몸으로 체험하시면서도
모든 것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감사 드리며 사셨다.
베네딕도 아빠스 학교에서 공부할 때 세상이 헛되다는 것과 많은 다른 것을 체험하고,
수녀원에 들어간 후 영의 정화가 이루어진다.
하느님께 봉헌된 시간(성무일도, 묵상기도, 잠심....)을 빠짐없이 지켰으나
5년 동안 메마름 중에 계셨고 늘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사셨다.
메마름 속에 들어 간다는 것은 내가 하느님 앞에 있고
하느님이 나를 통해서 비추어 주시므로 이를 통해 정화되고
성교회의 구원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잘못 살면 하느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려는 구원사업을 가로 막는 일이 된다.
신앙 안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주님께선 늘 가르침을 주시고
복음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당신 것을 찾아 나섰다.
수련기 때 막달라 마리아의 은둔소에서 가슴이 찔리는듯한 아픔을 통해
불신앙의 체험과 당신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빈손 체험하심..
기도는 마음을 하늘로 들어 높이고(마음의 비약),
열정을 가지고 사랑 고백을 함으로 영혼을 넓히고
사랑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키고(단순한 눈길),
고통이나 슬픔 중에도 하느님께 감사와 사랑의 탄식을 하는 것…
이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고,
내 영혼을 통해서 하느님이 역사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완덕으로 나가는 길은 예수님과의 일치이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그 길로 갈 수 있다.
성녀의 기도 방법은 복음서에서 단순한 신앙과 하느님의 사랑에로 일깨워져
무한한 사랑을 겸손하게 잠잠히 바라 뵙고 훔숭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녀 안에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온전히 바치며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어떻게하면 그 사랑에 맞갖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배우고
어린이가 부모에게 아뢰듯, 자녀 된 신뢰로 하느님께 있는 그대로 애정을 갖고,
단순하게 드리는 기도로, 성녀의 모든 힘은 기도와 희생에 있고
이는 주님께서 주신 남이 쳐 이기지 못하는 강력한 무기라 말씀하신다.
성녀가 복음서에서 찾은 성모님은 일상의 아낙네였으며,
기쁨과 슬픔, 고통당하시고 눈물 흘리시는 우리와 똑 같은 분이시고
단순한 삶 가운데 믿음 소망 사랑을 사신 분으로 많은 것을 알아 차리지 못하셨지만,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며 인내로이 기다리신, 한없이 내려가시어
심연과 심연이 함께 만나는 겸손을 보여주신 분...
우리와 똑같으시고 늘 우리와 함께 계신 분...
가르멜에서의 성모님은 가르멜을 아름다움으로 꾸며주시는 여왕이시며,
키워주시고 먹여주시고 보살펴주시고 모범을 보여주시는 어머니시고,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자매(동반자)이시므로
감추인 삶을 사신 성모님의 덕을 본받으려 노력해야 한다.
성녀의 마지막 소원은 성모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단순한 모습을 전하기 위해 성모님께 대한 시를 쓰고 싶어하셨다.
성모님에 대한 성녀의 사랑의 노래를 지었을 때는 병세가 위독하셨을 때다.
모래알 영성에 비추어 신부님께서는 자신의 지푸라기 영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푸라기는 아무 것도 아닌 비천한 것이며, 가볍고(낮추면 낮출수록 성령에 가장 잘 반응),
작은 불씨(하느님께서 부쳐주시는 사랑의 블씨)가 된다.
지푸라기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안에 있을 때와 작은 영혼들이 함께할 때다.(만화경)
성녀는 성모님의 이콘이며 성모님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자화상이다.
성녀께선 작은 영혼이 되어 예수님 무릎위에 앉아 계시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얼굴을 묵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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