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가만히 창문을 두드리는 시간
당신 앞에 앉아 하루를 돌아봅니다.
이제사
잊고 있었음을 의식합니다.
오늘 저의 삶 안에서
당신이 저와 함께 머무르셨음을
달빛처럼 가만히 오셔서
저를 비추어 주셨음을
저의 두려움과
게으름과 약함을 당신 앞에
내어놓습니다.
당신이 바라보시듯
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맑은 눈과 용기와 자유를 주십시오.
제게 웃음을 건네온 사람들
다정한 말을 건네온 사람들
아픔을 하소연하며 슬픔을 나눈 사람들
예리한 칼날의 말로 제게 상처를 준 사람들
거기 당신이 계셨습니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당신이 건넨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제 마음을 스쳤던 느낌에서
당신이 저를 이끈 산은 어디입니까?
제게 일었던 분노에서
당신이 저를 바라보도록 원하신
강은 어디입니까?
제게 솟아났던 환희에서
당신이 주신 바다의 선물은 어떻게
헤야려야 합니까?
당신을 보여주시고
나누어주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당신을 보며 당신의 사랑을 느끼며
당신이라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악의 그물에서 허우적거리던
유혹에 발목을 잡힌 시간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달빛처럼
가만히 다가와 그물을 끊고
덫을 푸신 분은
당신
달빛이 사라지고
날이 밝아오던 시간을 기억하며
오늘의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의 사랑을 아는 까닭에
죄에 머물지 않고
내일을 향해 가렵니다
저는 사랑받은 죄인
달빛이 창문을 두드리는 시간
당신이 내내 제 곁에 계셨음을
의식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 글/류해욱 신부님 -
06. 2. 18. 남천성당 주교관 앞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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