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들쭉꽃-
62살 할미의 백두산 산행기
신록의 계절의 6월.
할미의 무모한 도전은 동네 뒷산이 아닌 민족의 성산 백두산 천지를 밟아보기로 했다.
5월 31일 알싸한 새벽공기에 정신을 수습하고 2시에 울산에서 출발하는 인천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번 트레킹에 참여한 울산 고헌산악회 40명과 함께.
산이라면 동네 앞산이 고작인데...
우연찮게 울산 고헌 산악회에서 백두산 남파 종주를 한다는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어왔다.
종주(縱走)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한데 말이다.
백두산을 향한 내 무모한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 꾸물꾸물 머리에서 가슴으로 흐르는데
온갖 생각 속에 버스에서의 하룻밤은 거의 뜬눈으로 새우고
6월 1일 아침7시 20분에 인천 국제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김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 10시에 유피트레킹 여행사와의 미팅,
여행에 필요한 제반 서류를 받아 여권과 함께 챙겨 출국 수속을 밟아 11시 40분에
“범영훼리호“라는 커다란 여객선에 승선했다.
배정된 방에다 짐을 옮겨놓고 배 갑판위로 올라갔다.
아! 정말로 백두산엘 가나보다.
-인천 대교 건설현장-
배는 흰 물살을 가르며 인천 부두를 출발 가물가물 영종도가 보이는 지점쯤에
인천대교 건설현장의 웅장함이 드러났다. 모두다 감탄사가 절로 난다
우리나라의 기술의 대단함, 바다 한가운데다 다리를 놓다니...
한국에서 제일 긴 다리, 세계에서 6번째 긴 다리,
63빌딩의 높이의 주탑 가까이를 우리가 탄 배가 지나간다.
공해상의 보랏빛 저녁노을과 끼룩거리는 갈매기의 춤사위를 보면서 이 시간까지의 나를 돌아본다.
무식이 용기라고 했든가!
일반 관광도 아닌 6시간의 트레킹을 과연 할 수 있을까!
나이 62살에, 내 몸이 일기예보인데...
몸은 비대하여 고산병에 대한 걱정과 무르팍도 시원찮고, 허리도 병을 가지고 지낸지가
15년이 넘어 언제 주저앉게 될지 모르는데...
내가 지닌 여건들이 해발 2566m의 관면봉 종주가 가능할까 하는 걱정이다.
그러나 어쩌랴! 배는 이미 공해상을 넘어 망망대해에 이 몸이 떠있지 않은가!
일렁이는 바다위에 몸을 뉘인들 백두산에 대한 설렘 때문에 머리만 북적거릴 뿐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6월 2일 아침, 하늘은 잔뜩 찌푸린 채 안개비가 솔솔 뿌린다.
중국땅이 가까운지 경비정 한 척이 배꼬리에 붙어 따라 온다.
하루를 꼬박 일렁이는 바다위에서 보내고 현지시간 13시에 중국 영구 항에 배는 도착하여
입구 수속을 하기 위해 셔틀버스로 10여분 달려서 영구항 세관에서의 입국절차 은근히 까다롭다...
아니 까탈을 부린다.
나는 서적에 대한 까다로운 심사절차를 거쳤다. 불온서적이라도 찾는 겐지..
일행 41명의 입국수속이 1시간 이상 걸렸다.
세관통관절차가 왠지 억류되었다 풀려난 기분으로 씁쓸하다.
14시 40분 우리일행과 4일 동안 함께할 현지 가이드와 타고 다닐 전용버스와의 만남이다.
우리일행을 태운 버스는 백두산을 가기위해 영구항에서 통화로 들어간다.
영구항에서 심양까지 잘 뚫린 8차선 고속도로달리며 중국의 10대 고속도로에 속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심양까지 고속도로 주변에는 산이 보이지 않는 평야지역이다.
비가 오락가락하기 시작한다.
심양시내 오른팔을 치켜든 등소평 동상도 보이고 한글로 된 간판이 간간히 보이는데
그 중에 내 눈에 확 들어오는 빨강글씨로 “이 영순 개고기집”이다
17시 50분에 심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18시 30분 통화를 향해 출발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깜깜한 밤길을 차는 속력을 내지 못한다.
숙소인 통화까지 5시간이나 소요됐다.
23시 숙소로 정해진 호텔에 짐을 풀었다.
-중국과 북한 국경 철조망-
6월 3일 새벽 3시에 백두산을 향해 숙소인 통화를 출발하여 6시 30분 길림성 송아현이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아침식사와 산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챙겼다
7시 30분 송아현에서 장백현으로 출발했다.
장백 조선족 자치현의 건물들과 주민들의 가옥들을 보게 됐는데
우리나라 60년대의 산골 마을을 연상시킨다.
하늘이 우리를 도우셨음인지 햇살이 점점 퍼지면서 하늘엔 조각구름이 몇 조각 떠돈다.
비온 후의 깨끗함과 신록의 상쾌함이 몸과 마음을 가뿐하게 해주어 낮선 여행지의
두려움도 사라졌다.
버스는 장백산이라 푯말을 지나 길림성 장백산 자연 보호 관리지역을 거친다.
차창 밖의 풍경은 우리나라의 한적한 드라이브코스를 달리는 것 같지만
산기슭을 타고 압록강 발원지의 물이 힘차게 흐른다.
도로가에는 하얀 말뚝에 철조망이 쳐져있어
이곳이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압록강 대 협곡-
우리가 가는 이 남파 구역은 중국에서 개발하여 6월 초에 일반에게 정식으로 개방된
미답의 처녀지이다.
셔틀버스 이동 중에 그랜드 캐년을 방불케 하는 압록강 대 협곡을 볼 수 있었다.
산기슭을 커다란 커튼으로 주름잡아 놓은 것 같다.
화산이 분출하여 용암이 여러 갈래로 지나간 자리 차량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도
그 깊이는 보이지 않고 흐르는 물소리만 요란했다.
바로 압록강 발원지의 물소리...협곡의 생성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백두산 만병초꽃-
10시 10분 기온은 22도 37k 지점,
셔틀버스에서 하차 이곳서부터 트레킹이 시작된다.
옷깃을 여밀 만큼 바람이 세차다.
백두산 천지 쪽은 하얗게 눈 속에 덮여있다
이곳까지 차량으로 백두산의 변두리를 감상했다면 지금부터 발품을 팔아
백두산 구석구석을 옥수수 껍질 벗기듯 벗겨봐야지!
우리 일행은 천지를 향해 곧바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금강 폭포로 가기 위해 90도 경사길을 내려간다.
온통 들쭉과 노란 만병초 꽃밭이다.
가파른 길을 10여분 내려가면 거의가 습지이다.
고사목과 자작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습지,
바닥은 들쭉과 만병초 가지들이 엉겨 있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금강폭포-
11시 10분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지의 길을 손으로 더듬고 발로 더듬어야 한다.
미끄럽기도 하지만 돌 하나 잘못 건드렸다가는 90도 경사 길에
돌과 함께 사정없이 굴러갈 것만 같기 때문에 조심조심 하면서도
없는 길을 만들어 간다는 게 솔찮이 재미있다.
11시 30분 드디어 보았다
빽빽한 원시림속 계곡에 숨어 있는 금강폭포,
두 계단으로 쏟아지는 거대한 물줄기의 힘찬 굉음을...
금강폭포는 백두산의 숨어 있는 비경이다.
발품 팔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곳이었다.
높이 74m의 물줄기는 서파 쪽에 있는 금강 대 협곡으로 이어진다.
쏟아지는 폭포의 냉기 탓인지 이 곳의 온도는 12. 5도 약 10도가 내려간 기온이다
내려왔으니 또 올라가야 한다.
금강폭포 상류에서 점심도시락을 펼쳤다.
12시 30분 중식 후 천지를 향해 출발이다.
-용지(龍池)-
햇볕은 쨍쨍 바람은 산들산들 등산하기 좋은 날씨 겉옷을 벗었다.
2시 50분 “용지(龍池)”라는 작은 못을 지난다.
키가 큰 나무라고 없는 거대한 초원 내리쬐는 햇볕 탓인지, 쉬이 걸음이 걸리지 않는다.
얼마를 헉헉댔을까! 1885고지 수목 생장 한계선을 넘었다.
발밑에 깔려있는 것들은 들쭉과 만병초 나무다 거센 바람 때문에 키가 20~30cm자라지 못하고
가지는 서로 엉겨 있어 이 가지들을 밟고 걸어야 하기 때문에 땅이 밟히지를 않는 길이다.
능선길이라 은근히 빡세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뒤쳐지는 동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내 자신 나의 튼튼한 두 다리를 발견했다. 아직은 멀쩡하니까!
백두산은 통상 4개 구역으로 나누어 말한다.
북파, 6호 경계구역으로 오른다. 천문봉(2678m), 장백 폭포 등을 감상한다.
서파, 5호 경계구역으로 오른다. 마천봉(2631m), 금강협곡, 금강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코스,
동파, 북한 쪽으로 오르는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2744m) 지금은 갈 수 없지만
언젠가는 길이 열리겠지!
남파, 관면봉(2566m)지금 우리 일행이 이 처녀지에 발자국을 찍고 있다.
덤으로 금강폭포를 감상한 셈이다.
몇 구비의 능선을 넘었건만 손에 잡힐 듯하던 천지는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보이지 않고
일행의 숨소리들이 거칠어 온다.
2380고지 발밑에 밟히는 것은 누런 마른 풀잎과 노랗게 핀 만병초 꽃, 눈이 시리도록 보고 걷는다.
예까지 올라 왔는데 별 이상이 없다면 고산병 걱정은 내려놔도 될 것 같다.
8부 능선을 넘었다 싶으면 9부 능선이 앞을 버티고 있고, 또 얼마를 걸었을까?
습지다 얼음장 밑으로 졸졸 물소리가 들린다.
물소리를 뒤로 하고 헉헉대며 또 올라간다. 발목 위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이다.
백두산은 나에게 사계절을 한꺼번에 체험케 한다.
눈길을 헤집고 정신없이 능선을 오르면 시꺼먼 화산재 자갈이 갈려 있는 능선이 또 나를 기다린다.
뺨따귀를 후려치는 바람이 세차다
저 위에 하얀 설원의 천지가 보인다.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 길은 발걸음 마다 감동, 감동의 연속이다
트레킹이 아니고서는 이 감동을 느낄 수 없었으리라.
걸어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아무나 느낄 수 없는 것이 제!
내 폐활량이 이만큼 좋은지도 알게 됐으니 종합병원에 온 것 같으니...
그러나 몸뚱이는 무겁다. 준비 좀 하고 올 것을...
체중을 좀 줄이고 왔다면 아마 천지를 향해 뜀박질을 하지 않았을까!
이 튼실한 뱃살을 안고 열심히 걷고 또 걸어 온 결과 저 쪽에 천지가 보인다.
커다란 자연석에 천지(天地)라는 표지석이다.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길은 새로 뚫은 길이다.
천지를 향해 정말로 뜀박질을 했다
16시 기온은 0도, 예상 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마음이 바쁘다
하얀 눈길을 퍼벅 거리며 달렸다.
그런데 천지는 하얀 보자기를 덮어놓았나? 천지는 안개로 덮여있다.
3대가 공덕을 쌓아야 천지가 문을 열어 준다는데...
조상님들 탓을 해야 하나? 안타까운 맘에 천지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그 때, 누군가가 “천지다”하는 외마디에 눈을 돌렸더니 새파란 비취색의 물감,
그 둘레를 하얀 테두리처럼 둘러쳐져있는 눈(雪),
아! 천지는 눈(目) 깜짝할 사이에 내게 고 만큼만 보여주고
안개가 사르르 와서 천지를 덮어 버린다.
막 카메라를 꺼내 샷타를 누르는데.... 애구머니나! 안타까바라...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닦아도 천지는 다시 보여주지 않았다.
안타까움이 가슴을 쓰린다 만 다시 한번 더 오라는 천지의 대답같아서
발길이 무겁지만 돌아살 수 밖에....
천지 그 곳에서 월북했다...남파에서의 천지는 북한 땅이다
우리가 달려 간 곳은 중국 측에서 바라볼 천지가 아닌 북한 측에서 바라본 천지였다.
중국 표지석 뒤에 조선 표지석 글자가 새겨져 있다
천지 쪽은 북한 땅, 확~펼쳐진 평원은 중국 땅이었다.
우리가 성급하게 달릴 때 중국 경비병이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다시 돌아 나올 때 그 경비병은 다시 가도 괜찮다고 손 신호를 해주었다.
그래서 갔을 뿐인데 한 쪽 발은 중국에 한 쪽 발은 북한측에 들여 놨으니
천지에서 눈밭에 뒹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중국과 북한을 왔다 갔다 하게 되었다.
천지에 눈이 온 것은 3일 되었다는데 눈이 얼어서 바싹바싹 소리가 재미있었다.
눈 위를 뒹굴면서 천지를 옴 몸으로 만끽했다.
16시 30분 하산 길 중국 경비병 초소에는 눈으로 터널을 만들어 놨다.
눈 속에 갇혀 있는 경비병들을 보는 순간 측은지심이 발동, 나도 어미이기 때문일까?
맴이 짠하다.
17시 30분 셔틀버스(봉고)를 타고 내려오면서 송화 탄화목을 감상했다
중국경비병들의 배려로 차량에서 내려 기념찰영도 하고 탄화목 설명도 듣게 되었다
약 300년 된 싸리나무 숯인데 이 길을 만들 때 나왔단다.
18시에 우리의 전용버스로 백두산 매표소를 출발 숙소인 통화로 출발했다.
꾀 굵은 빗줄기가 차창을 내리친다.
낮에 쨍쨍 하던 하늘에서 천둥까지 우르릉거리며 비는 숙소에 도착할 때 까지
거의 8시간을 쏟아놓았다.
날씨며 기온이며 하늘이 허락해준 백두산 트레킹,
민족의 성산을 이 나이에 내 발로 올랐다
천지를 향해 오를 때의 힘겨움과 오르겠다는 집념과 용기,
금강 폭포의 화려한 물줄기의 춤사위,
천지의 푸른 기상을 내 삶에 접목하고 살 것을 약속하며
운무에 감춰진 천지를 가슴에 품고 왔다.
이 할미의 감격스런 산행기는 무사고 산행에 팀을 이끌고 온 산행대장,
안전을 위해 노심초사로 이끌어 준 모든 분들의 도움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