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오! 귀한 선물이여~

할미 아녜스 2005. 9. 1. 00:26
      하루는 아침과 저녁으로 이어지듯이 찌는 듯한 더위도 내년을 기약하며 물러가고 있다 계절의 약속은 어김없이 이어져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공기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의 초엽, 기다리던 그 계절이 돌아 온 것이다 무더위가 싫고 짜증나서 시원한 바람을 그리며 기다리던 가을, 하늘은 맑고 청명하며 살갓을 스치는 바람 또한 향기롭다. 옥담 안에서의 생활이 무미건조하고 의욕이 없는 나날이 된다고 들었다. 오늘 하루는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신 선물이다. 이 하루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면 이 하루를 소중하게 만들어 아쉬움과 후회가 없는 삶으로 엮어 나가는 것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은총에 대한 응답일것이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를 나타내는 이름이 있다. 야생화, 잡초에게도 존재의 가치가 있어 하느님께서 이름을 주셨다 이름은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이며 존재의 의미이다. 구치소 정문을 통과하면서부터 그 나무의 이름, 원산지가 적힌 이름표를 단 나무들과 꽃들을 보면서 나도 가방 속에서 이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이름표를(출입증)가슴에 달고 계단을 오르고 묵직한 철문 앞에서 통과으례를 하고 꼬불꼬불한 긴 복도를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오늘 만날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이름보다 숫자로 더 익숙한 그들, 배척과 비난의 상징. 죄명이 된 그들의 이름표, 우리는 코흘리개 때부터 흰 손수건과 함께 가슴에 이름표를 달았다. 이름표, 나의 존재를 남에게 알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남들은 그 이름표를 보고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또 나를 기억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잡초라 부르지 않고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꽃이 되어 다가올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들은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자들이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의미 있는 이름은 숫자로 대신한 그들이다. 이미 사회와 분리된 그들은 이름까지 박탈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가장 힘들었으리라. 상실된 그들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 준다. 이 곳에서 만난 그 숫자들의 위축된 자아를 보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상실된 그들의 존재를 인식시켜 주고 위축된 자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 굶주리고 허기진 사람들이다. 이런 그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까? 하고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신뢰를 쌓는 것이 곧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느꼈고 그대로 지금까지 실천하려한다.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들을 믿는 만큼 그들은 마음을 열어주었고 눈빛만 봐도 그들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어느 날, 어느 숫자(이름)가 그의 특유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수줍은 듯이 내미는 건 십자목걸이였다. 나는 살아오면서 주고받은 선물이 꽤나 된다. 그러나 옥담 안에서 물질적인 선물을 받으리라 생각도 못했기에 선 듯 손이 나가질 못했다. 그의 온 마음이 담긴 선물, 하얀 실로 곱게 엮어진 하트 안의 십자가로 엮어진 것 이였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 코끝이 찡해 옴을 느끼면서 감사의 뒷말을 이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마음을 囚衣속에 묻고 있지만 순수하고 맑은 영혼들을 가끔 볼 때, 나는 나의 꽁무니에 삐죽이 나온 나의 죄상들이 보여, 오히려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럴 땐 이렇게 뇌까린다 "그들과 나는 옷이 바뀌였다고" 그 후, 그와 유사한 목걸이가 신문과 방송을 탄적이 있었다 모 유명한 숫자(이름)가 이해인 수녀님께 편지와 함께 보냈다는 바로 그 목걸이다. 그는 출소 후 사회적응을 못하고 또 다시 보게 되고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연속적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나는 그를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한다. 나는 비록 힘이 없으나 내가 믿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그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실 줄 믿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존재 목표가 자기 실현, 자기완성, 자기의 정체감이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야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 우선되고 피나는 자기 노력 또한 따라야겠지만, 따라오는 하느님의 선물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에 비길 수 없다. 내가 이들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바로 하느님 선물이다. 이것을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이라고도 한다 "각자가 받은 은총의 선물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가지고 서로 남을 위해 봉사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갖가지 은총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1 베드로 4. 10) 이 은총은 나의 의무이며 아름다운 선물이기도 하다 오늘 만나는 이들이, 자기 존재의 의미가 담긴 이름을 찾아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면서... 05. 8. 31. 구치소에 갔다 옴시롱~
    사진: 이 종원 백두산 야생화

    '주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령이야~~妄靈  (0) 2005.09.09
    나비땜시~  (0) 2005.09.06
    수녀원을 다녀오면서  (0) 2005.08.27
    새우깡  (0) 2005.08.23
    행복...............(복)  (0) 200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