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별님·안병기

어느 할머니의 한 나절 (안병기 님글)

할미 아녜스 2005. 10. 9. 00:34

    
    
    늑대별이라는 닉으로도 통하는 안병기 기자님의 글을 옮겨 봅니다.
      할머니는 풍경 속으로 녹아들고 풍경은 할머니를 받쳐주니 얼마나 넉넉해 보입니까.
    ⓒ2005 안병기
      할머니는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교회의 시멘트 포장된 마당에다 토란 줄기를 말리는 중입니다. "내년 가을에도 내가 토란대를 널 수 있을까?" 할머니는 지금 토란줄기를 말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2005 안병기
      어쩌면 할머니는 먼저 세상 떠나신 할아버지를 그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가만 있자, 영감을 만난 게 스무 살 되던 해 가을이었던가. 오늘처럼 햇볕이 좋은 가을날이었던가 몰라. 추억이 잠깐 할머니는 마음 속 고랑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모르긴 해도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첫사랑이었을 겁니다. 그 시절에야 잔말없이 부모가 맺어주는 대로 결혼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 한때는 내게도 꽃 부럽지 않은 시절이 있었지.
    ⓒ2005 안병기
      십중팔구 할머니에게 '즐긴다'는 말의 뜻을 아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되레 "즐기는 게 뭐다요?" 이렇게 물으실 겁니다. 산에서 등산을 즐기다 내려온 제가 '즐긴다'는 뜻을 알리 없는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넵니다. "할머니, 뭐 하러 고생스럽게 이런 걸 말리고 그러세요?" "기력이 남아 있으니 꼼지락거려야 밥이 들어가지. "올해 연세가 얼마나 되셨어요?" "나? 여든이 넘었지." 삐비꽃처럼 허옇게 쇠어버린 할머니의 머리칼. 시간은 어떻게 해도 녹슬지 않건만, 삶은 왜 이리 빨리 녹이 스는가. 사람의 삶도 스테인리스 같이 녹슬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2005 안병기
      워메, 시방 내가 뭔 짓거리허고 있다냐? 할머니의 손끝이 점점 빨라지더니 한 순간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 허리를 펴고 일어섭니다. 아마도 집안에 밀쳐두고 오셨던 일이 이제야 생각나셨던가 , 아니면 가스 불 위에 찌개 올려놓은 것을 깜박 잊고 나오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리 말을 뒤채도 소용없는 일이 삶에는 많은 것이겠지요 늦도록 잘 어울리다가 그만 쓸쓸해져 혼자 도망나옵니다 돌아와 꽃병의 물이 줄어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꽃이 살았으니 당연한데도요 바퀴벌레를 잡으려다 멈춥니다 그냥, 왠지 불교적이 되어 갑니다 삶의 보복이 두려워지는 나이일까요 소리 없는 물만 먹는 꽃처럼 그것도 안 먹는 벽 위의 박수근처럼 아득히 가난해지질 기다려봅니다 사는 게 다 힘든 거야 그런 충고의 낡은 나무계단 같은 삐걱거림 아닙니다 내게만, 내게 만입니다 그리하여 진실된 삶이며 사랑도 내게만 주어지는 것이리라 아주 이기적으로 좀 밝아지는 것이지요 김경미 시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전문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던 할머니와 나.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엇갈렸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는 토란줄기에 말을 걸고, 나는 할머니에게 말걸었던 것이지요. 아니, 할머니가 보여주는 풍경에다 말을 걸었다는 게 맞을 겁니다. 다시 가던 길을 서두릅니다. 저만치 가다가 뒤돌아 봅니다. 미처 흘러가지 않은 흰구름처럼 할머니는 아직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훔쳐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