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인 사람은
에고가 없이 사는 사람이다.
그는
“나는 전체의 일부이다. 전체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조금도 분리되어 있지않다.”
는 것을 안다.
“나는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있지않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은 엄청난 자유를 가져다준다.
그것은 광대함을 가져온다.
하늘 전체가 그대의 것이다.
그대는 더 이상 작은,
아주 작은 에고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우리는 광대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작은 공간에 한정시켜 왔다.
그것이 그렇게 많은 불행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바다를
이슬 한방울에 억지로 밀어넣는 것과 같다.
우리는 날개를 가진 새로서 하늘 전체를
날아다녀야 하는데,
작은 새장에 갇혀 있다.
우리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계속 가두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감옥이고, 우리가 죄수이며,
우리가 간수이다.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이 신비주의자가 그 모든 것을
하나의 꿈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
그것은 하나의 꿈이다.
잠에서 깨는 순간 그대는 깨닫는다.
“이상하다. 나는 사자에게 쫓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사자였고 쫓기는 사람도 나였다.
그리고 나는 또한 보고 있던 사람,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하나의 꿈과 같은 것, 그것이 삶이다.
이제 시간이 왔다…
아이들이 하는
어리석은 장난은 용서받을 수 있다.
아이들은 길 잃을 필요가 있고,
많은 잘못을 저지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을 때
그대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데 에고는 가장 어리석은 장난이다.
그것은 실체에 대항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존재에 대항한다.
우리는
우리의 상상, 우리의 욕망, 우리의 기억,
우리의 야망, 우리의 질투로써 계속
우리 자신의 감옥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계속해서
우리 주위를 미묘한 조직들로 둘러싼다.
그 조직 전체를 에고라고 부른다.
마음이 하는 모든 일은 에고라고 부른다.
바로 이 순간부터 그것을 인식하라.
그리고
서서히 서서히 마음의 감옥에서 떠나라
사진은 06. 2. 8. 살티 "김영제 순교자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