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 전기
그 분은 나의 하느님이십니다.
-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 전기 -
역자 : 이상호(안드레아) 관구 재속가르멜회 / 관리참사
현대의 신비가,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시벳은 1906년에 21세라는 젊은 나이로 프랑스의 디죵 가르멜 수녀원에서 선종하신 맨발의 가르멜 수녀로서 1984년 11월 25일 요한 바오로 II세 교황의 집전으로 시복되었다.
복녀와 거의 같은 시대에 살았던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에게서 감화를 받았지만 엘리사벳의 영성은 그 길이 특이하여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성서적 영성이 존경하는 바오로 성인의 덕이라고 말하고 있다. 복녀의 이름, 엘리사벳은 문자상으로는 하느님의 집 이란 뜻으로서 복되신 성삼께서 함께 하신다는 당신의 신학을 사로잡았는데, 그 신학은 기도의 침묵 안에서 찾아내었는데, 영광의 찬미(에페 1, 6.12) 안으로 들어가 기도하는 바로 그 사람을 변모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복녀가 하신 가장 유명한 말씀, 나는 이승에서 천국을 발견했습니다. 천국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은 내 영혼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씀은 복녀가 이 교의를 당신의 영적 체험 안에서 실현하였음을 요약해주고 있다.
복녀는 영혼들로 하여금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추구하고 찾아내도록 인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하늘나라에서의 나의 사명은 영혼을 이끌어주고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자연스럽고도 사랑 가득한 행동으로 하느님께 매달리도록 돕고 위대한 내적 침묵 안에 영혼이 머물도록 돕는 일일 것입니다. 위대한 내적 침묵은 하느님으로 하여금 그 영혼들에게 당신의 표시를 해주시고 영혼들을 당신 안으로 변모하도록 해줍니다.
그 분은 나의 하늘이십니다.라는 제목의 삼위일체의 엘리사벳 전기의 저자, 제니퍼 무어크로프트는, 엘리사벳이 기도생활을 깊이 있게 하고 싶어 하는 모든 영혼들 (수도원 안에 있는 영혼이든 밖에 있든 영혼이든) 에게 호소하고 있는 메시지를 잘 요약해놓고 있다.
1. 진지한 작은 악마
-유년 시절-
엘리사벳 카테츠(Elizabeth Catez)는 군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돌진하는 기병대가 마음에 끌려 윤이 반짝반짝 나게 닦은 철모를 쓰고 햇빛에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녀의 어머니, 마리이 롤랑은 외할아버지인 위싸르 제7연대 연대장, 레이몽 롤랑과 외할머니인 뤼네뷜의 죠세프느 클렝의 외동딸로 1846년 8월 30일에 태어났다.
한편 엘리사벳의 아버지는 배경이 별로 신통치 않은 가문 출신이었지만 힘들게 노력해서 사회적 지위를 높인 분이었다.
아버지인 죠세프 카테츠는 할아버지 앙드레 카테츠(Andre Cattez)와 할머니 피델리느 욀의 7남매 중 4째로 애르쉴라 마을에서 1832년 5월 29일에 태어났다. 친할아버지는 학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일자무식의 농장 머슴이었고 아버지 죠세프가 8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친할머니가 1876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엘리사벳은 외가에서 성장했고 그래서 그녀가 접한 사람들이라고는 외가 식구들뿐이었다.
아버지 죠세프는 농장에서 일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21세가 되던 해 자신의 이름(Cattez)에서 ꡒtꡓ자 하나를 떼어내 버리고는 육군 장비관리군단 제8기병 대대에 자원입대해서 근 8년 동안 알제리아 전쟁에 종사했고 후에 1870년 전쟁 중 세당에서 포로가 되었다. 아버지는 1972년에 육군 중위로 진급했고 1875년에는 대위가 되었다.
그 후 곧 뤼넬(에롤)에 배속되었는데 거기서 마리이 롤랑을 만나, 1879년 9월 3일에 결혼했다. 그때 죠세프는 47세, 마리이는 33세로 이미 둘 다 젊지 않은 나이였다. 그런데 두 사람은 성격상 많은 점에서 서로 달랐다. 죠세프는 사교성이 풍부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온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맥주와 시가(담배)를 좋아했으며 동료 군인들과 함께 잘 지냈다. 마리이는 죠세프보다는 훨씬 의지가 매우 굳은 성격으로서 얀센파에 기울어져 있었다. 마리이는 죠세프를 만나기 이전에 한 때 어떤 이와 약혼을 하고 결혼하려고 하는 참이었는데 그 약혼자가 1870년 전쟁에서 죽어 그녀는 심란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에게 공통적인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깊은 신앙심이었다. 이 두 사람을 한데 묶어서 그 결혼을 튼튼하고 넉넉하게 해준 것은 이 신앙심이었다. 이것은 죠세프의 성격에 성실성과 고결성을 보태주었고 이런 성격 때문에 죠세프는 그의 동료 장교와 부하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마리이의 의지력은 마리이가 장차 닥칠 고난의 시기를 극복하고 나가는 힘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많은 일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죠세프는 아보르에 있는 군부대에 배속되었다. 이곳은 두 사람이 결혼생활을 해가는 동안에 배속된 많은 새로운 부대 중에 맨 첫 번째로 배속된 부대였고 그 후 두 사람은 이런 일에 익숙해졌다. 마리이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았다. 난산일 것이라고들 했다. 마리이는 36시간이나 계속된 길고 힘든 진통을 겪던 중 1880년 7월 18일 이른 아침에 죠세프는 아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는 바로 가로수가 뻗어 있는 길을 달려 성당에 갔다. 그 성당에서는 군종신부, 샤보아소 대위가 미사 드릴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 군종신부에게 자신의 아내와 아기가 무사하기를 비는 미사를 바쳐달라고 부탁했다. 그 미사가 끝나는 시간에 엘리사벳이 태어났다.
건강하게. 훗날 카테츠 부인은 자랑스럽게 썼다, 아기가 몹시 예쁘고, 대단히 활기에 넘쳐 있었다“고. 그날은 주일이었다. 태어난 날이 주일이라는 사실은 먼 훗날 엘리사벳을 매우 기쁘게 했던 일이었다. 또 며칠 후인 7월 22일에 세례를 받았는데 그날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무척 사랑했던 분의 축일이었다. 이렇게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에 세례를 받은 것을 엘리사벳은 또 무척 기뻐했었다.
아보르의 군부대는 아주 시골풍의 막사(幕舍)였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행복하게 살았던 소박한 막사라고 표현했다. 이런 시골의 환경 속에서 카테츠 부인은 엘리사벳을 낳은 스트레스를 이기고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부인은 엘롸즈라는 이름의 가정부를 두어 자신을 돕게 했고 그래서 부인은 곧 작은 딸에 대한 열렬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잦은 전속(轉屬)(이것이 엘리사벳의 어린 시절의 삶의 모습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아보르을 오래도록 즐길 수가 없었다. 이듬해 5월 그들은 옥손느로 옮겼는데, 카테츠 부인은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운 딸에게 사나운 기질과 대단한 의지력이 급속하게 발달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것은 부인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워주었다.
엘리사벳이 태어난 지 19개월 되었을 때 롤랑 부인이 중병에 걸렸기 때문에 어머니(주 : 엘리사벳의 외할머니)와 함께 머물기 위해 서둘러 남쪽으로 가야 했다.
엘리사벳의 외가인 롤랑 가(家)는 사령관 롤랑이 군에서 퇴역하자마자 오드 지방으로 돌아와 쌩-일래르에 정착해서 그 지방의 세금 조사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카테츠 부인은 엘리사벳을 데리고 갔는데 그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는 동안 어떤 특별행사가 있었다. 그 행사는 아동들을 위한 특별 축복예절로 끝이 나게 되어있었는데, 그것을 주선한 수녀들 중 한 사람이 카테츠 부인에게 와서, 엘리사벳이 아끼는 쟈넷트라는 인형을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로 써도 되는지 물었다. 그 인형에게 금빛 별로 휘덮인 유아복을 입혀 놓으면 엘리사벳이 그 인형을 못 알아보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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