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요염한 작은 숙녀
-이 세상에서의 삶-
이들 가족이 뒤죵에 돌아오자마자 두 딸 아이가 참석하는 가운데 온 가족이 재회하는 거창한 파티가 열렸다. 기트는 그 해 음악원에서의 공부를 끝냈고 포레이 선생과의 수업도 끝났다. 그러나 카데츠 부인은 두 딸에게 영어를 배우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마리루이즈 알로와 함께 두 딸에게 영어 수업을 시키기 위해 젊은 영국여자, 엘리스 스켈튼을 고용했다.
스켈튼 선생은 이 대 나이 서른이었고 얌전하며 내성적이었다. 스켈튼양이 카톨릭 신자가 되자 스켈튼의 가족들이 그녀와의 연(緣)을 끓어버렸기 때문에 카데츠 부인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녀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엘리사벳은 영어 수업을 즐겼다. 엘리사벳의 음악가적인 청각에는 그 언어가 새들의 언어처럼 들렸던 것이다.
한편 엘리사벳은 글씨 쓰기를 더 잘해 보려고 애를 Tm고 있었다. 엘리사벳은 상류사회에서 쓰는 매우 화려한 글씨체(?)를 익히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체는 그녀에게 도무지 맞지 않아 그녀의 필체는 거의 읽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편지에서 가끔 이 점에 대해 사과를 했다.
엘리사벳이 가르멜에서 지원자가 되었을 때 수녀원장은 아녜스 수녀(이 수녀는 아름답고 고전적인 필체를 구사하고 있었다)에게 명하여 엘리사벳에게 글씨공부를 시켰다. 그 수녀는 보다 둥글둥글하면서 단순하고 선명한 필체를 가르쳐 주었는데, 이 글씨체가 훨씬 더 엘리사벳 기질에 맞았다.
이 두 딸은 바느질 수업도 했고 그래서 자신들의 옷은 스스로 만들어 입었다. 엘리사벳은 자기는 요염한 작은 숙녀라고 스스로 말했다. 엘리사벳은 뛰어난 심미안(審美眼)의 소유자였고, 그래서 의상은 항상 아름다웠고 최신 유행을 따라 입었다.
엘리사벳은 이런 모든 활동을 위한 하나의 틀을 이미 세워 놓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날들이 너무나도 짧아 보였다. 엘리사벳은 언제나 7시 미사에 참례하려고 애를 쓰곤 했고 대개는 가까이 있는 “착한 목자 수녀원”엘 다녔다.
가르멜 성당에는 금족령이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엘리사벳이 그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나 한참동안을 꼭 꿇어앉아 기도하며 보내곤 했던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걱정거리가 생겼다.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카데츠 부인의 건강이 가족들의 걱정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당했던 그 뱀에 물린 일로 인한 상처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었는데 그 상처가 이제 다시 도진 것이다. 12월 초경에는 카데츠 부인이 너무 심하게 앓아 영영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기 위해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고 따라서 기르멜에 들어가려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인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자상하신 어머니의 회복을 비는 엘리사벳의 기도는 자신의 성소가 위태롭게 될지도 모른다는 고뇌와 맞물려 두 배로 열렬했다.
2월 초 쯤에 엘리사벳은 어머니가 영영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성모취결례 축일에는 다시 쓰기 시작한 단 한권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성모님의 매 축일마다 저는 착하신 성모님께 저를 새롭게 봉헌합니다.
오늘 저는 성모님께 저를 드리고 다시 한번 그 분의 품안에 제 자신을 던졌습니다.
저는 더욱더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제 성소를,
성모님께로 향한 제 성소를 맡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더 이상 원하시지 않으신다면 예수님의 뜻대로 하소서.
하지만 저는 이 세상에서 거룩해 질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제가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하소서.
이 세상의 어떤 하잖은 것들도 제 마음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시고,
제가 그런 것들에 집착하지 않게 하소서!
저는 예수님의 정배(淨配)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어, 그 무엇도 우리를 떼어 놓지 못할 것입니다.
가르멜에 들어갈 수 있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이 불확실성의 기간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엘리사벳은 가르멜의 삶의 내적 핵심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은 외부의 것을 연모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과 사랑으로 일치하는 것이었다.
참된 가르멜 정신은 자신에게 빼앗아갈 수 있는 그런 어떤 것이 아님을 엘리사벳은 깨달았다. 어떤 처지에 있던 엘리사벳은 하나의 진정한 가르멜인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사벳은 열정적인 한바탕의 기도와 고행에 자신을 내던졌다. 이 기도와 고행은 어머니가 만류하지 않으면 진정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2월초에 엘리사벳은 아침식사를 거르기 시작했는데, 사흘이 지나자 어머니가 이것을 알아채고는 크게 호통을 쳤다.
이일을 엘리사벳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가 계속해야 하는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1월초에 엘리사벳은 예수회가 실시하는 피정에 참석했고, 그 사람들의 충고에 따라 엘리사벳은 노트 한 권을 준비하여 그 날 저지른 잘못은 그 날로 모두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한 내용은, 급한 성질이 아직도 주된 결점이다. 라는 것이었다.
오늘 나는 내 주요 결점에 관련된 몇 가지 희생을 예수님께 바치는 기쁨을 맛보았는데 그 희생이 내게 많은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난 내가 얼마나 유약(柔弱)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내가 부당하게 하셔서 내 안 깊숙한 곳에서 말씀을 들려 주셨기 때문에 나는 그 분의 말씀에 귀 기울였고 그분의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지 참을 준비를 했습니다.
셀레네 수도원장이 떠난 후 엘리사벳의 고해 신부가 된 분은 몽시뇰 골마르였다.
그는 엘리사벳이 보기에 그리 엄하지 않은 분이었기 때문에 엘리사벳은 고해 신부가 체스네 수도원장으로 바꾸어졌으면 하고 바랐다. 체스네 수도원장은 그 피정에서 강론을 한 예수회 신부였는데, 엘리사벳의 어머니는 체스네 원장이 엘리사벳을 지나치게 부추길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는 그 고해신부를 바꾸는 일이 내키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엘리사벳은 그 문제를 없던 일로 했다.
엘리사벳은그 외의 나날을 성당에서 행하는 기도와 성체강복에 열심히 참석했으나 다시 한번 어머니가 그런 모든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바깥출입을 일체 하지 않았다. 이런 모든 것은 아주 값진 체험이었고 엘리사벳에게 가장 큰 희생인 극기(克己)임을 엘리사벳은 배웠다. 이런 체험은 엘리는 자신의 체험을 부인(否認)하는 것임을 엘리사벳은 배웠다. 이런 체험은 엘리사벳의 기도를 풍부하게 해 주었다.
에수의 성녀 데례사가 쓴 “완덕의 길”을 읽고 난 후의 감상에 대해 그리고 관상기도를 다루는 법에 대해 언급하면서 엘리사벳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데례사 성녀께서 관상에 대해 말씀 하실 때, 그것(관상)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하시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도단계를 말합니다. 이때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과 너무 친밀하게 결합시키시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이시다, 라는 등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묘사 안에서 나는 저 피정동안에 그리고 그 후에도 주님께서 나를 가끔 올려주신 그 귀한 황홀경을 인식하게 됩니다.
엘리사벳의 일기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내용은 그의 무아지경(無我境的)인 기도의 순간들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 기도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무아경은 아니었다. 이 여러 가지 신적 교유(交遊), 즉 고귀한 무아경을 겪는 동안 나는 예수님께 당신의 십자가를 주십사고 청합니다. 그 십자가는 내 버팀목이요 내 희망입니다. 나는 그 주님의 십자가를 나누어서 지고 싶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내게 훌륭히 나누어지도록 허락하셨고 나를 그분의 정친한 친구로, 또 그분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자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내 애덕과 배려(配慮), 내 희생과 기도로 나는 그분의 고난을 잊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그분을 사랑해 드리고 싶고 그분에게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그분께 되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엘리사벳이 영성체를 할 때나 자신의 희생을 바치며 기도할 때 기억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연세가 지긋한 지주인(地主)인 샤삐씨(氏)였다.
샤삐씨는 훌륭한 분이며 매우 인애(仁愛)로운 분인데도 종교를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하는 분이였다고 엘리사벳은 어느 글에 썼다.
엘리사벳은 그분의 귀의(歸依)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교구에서 곧 개최할 예정인 포교(布敎)행사가 그분을 신앙에로 되돌리는 수단이 되기를 희망했다.
엘리사벳이 몹시 기다리던 그 포교행사는 3월 4일에 시작 되었고 엘리사벳은 대성당에서 있을 장엄한 개회식에 참석했다. 엘리사벳은 그 모든 강론이나 설교를 다 이해할 수가 없었고 때로는 마을에서 벌이는 만찬에 가야할 경우도 있었으며 또는 포교행사에 너무 자주 참석한다고 어머니가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참석한 곳에 대해서는 엘리사벳은 그때그때 메모를 해두었는데, 행사들은 대체로 다 유익했고 매우 감동적이었으나 엘라사벳의 마음을 어지럽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더러 있었다. 설교는 그 당시의 대부분의 포교행사 때처럼 지옥불과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들에 대한 것이 많았다. 그러나 어린이로서의 엘리사벳이 가졌던 모든 공포는 사랑이 모두 다 빨아들여 버렸다. 엘리사벳은 지옥의 불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강요당하는 그런 단계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죽음과 심판에 관한 설교를 들은 후, 엘리사벳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상한 일이지만, 난 이젠 하느님의 심판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저녁에는 내겐 공포란 조금만큼도 없습니다.
예수님, 당신 앞에 나서면 왜 무서워 떱니까?
결점이 있고 잘못이 많다고 해도,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을 단신은 벌주시나요...?
또 어떤 설교가(說敎家)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아니면 춤을 추러 가서도 안 되고 극장에 가서도 안 된다든가, 아침에 성체를 영하고 저녁에 춤 추러가서는 안 된다든가, 또는 중대한 사유가 없는 한 축제에 열중하는 것은 무거운 죄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 엘리사벳은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교신부 중에 한 분인 리옹 원장님께 말해 볼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엘리사벳은 포교행사 도중에 관례적으로 하는 총고해를 할 때 리옹 원장을 만났다.
엘리사벳은 다가오는 화요일에 고해성사를 보기를 희망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음 날 까지 고해를 미루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동안인데, 엘리사벳이 한 시간 반 동안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온전히 몰입되어 있는 모습을 어떤 친구가 보았다. “엘리사벳은 자신만의 독특한 어떤 상태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그녀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라고 그 친구는 말했다.
고해성사를 하는 동안 리옹원장은 엘리사벳이 자신의 세례 때의 천진함을 결코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점은 다른 고해 신부도 그렇게 생각하고 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엘리사벳에게 한없는 의안이 되었다. 또한 원장은 엘리사벳이 진정한 성소를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엘리사벳에게 말해 줄 수 있었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특히 며칠 전 일기에서 어머니가, 비록 상처 안에 균이 항상 잠복하고 있지만, 병에서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썼기 때문에, 이런 원장의 말은 고무적이었다.
드디어 엘리사벳은 다시 한번 더 가르멜을 희망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리옹 원장은 엘리사벳을 대신하여 고해 신부인 골마르 몽시뇰에게 말씀드려 주겠노라고 했다. 일은 급속도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며칠 후인 3월 20일, 동생 키트가 ‘자기가 어머니에게 “언니는 가르멜에 있어야만 행복해 질 수 있으니까, 언니로 하여금 자신의 성소를 따르도록 해 주셨으면 좋겠다. 고 말씀 드렸노라’고 언니 엘리사벳에게 말해 주었다.
어머니는 엘리사벳이 아직 너무 어리다고 하면서 반대 했지만, 마지못한 듯 20세가 되었을 때 까지도 그럴 마음이 있다면 허락하겠노라고 했다. 엘리사벳은 너무나 기뻐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기를 잃는다는 생각에 엄마나 동생이 전혀 다른 의미의 눈물을 말없이 흘리고 있음을 눈치 빠른 엘리사벳은 알고 있었다. 엘리사벳은 자기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기도는 선교를 통해 하느님께로 되돌아가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 특히 샤삐 씨를 위해 바쳐지고 있었다. 이 “볼테르 추종자”가 포교행사동안에 병들어 누운 일에 자극을 받아 엘리사벳은 기도를 배(倍)로 늘여, 샤삐씨의 병이 그분을 위한 은총이 되고 재고의 수단이 될 수 있기를 빌었다.
처음에는 엘리사벳의 기도가 마치 응답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꼭 한 주일 지났을 때 샤삐 씨가 좀 회복하여 실제로 어느 포교행사 밤에 참석했던 것이다.
엘리사벳은 일기에서 기도했다.
“오오 간절히 비 오니,
부디 샤삐씨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스르지 않게 해 주소서,
착하신 어머니, 그분의 마음을 감동케 하사 개심(改心)케 하소서.“
전교할 날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엘리사벳의 기도는 그만큼 더 절실했다. 엘리사벳이 기뻤던 것은 그녀의 어머니도 역시 활약하셨다는 점이다. 카데츠 부인은 용기를 내어 샤삐 씨를 방문하였고 고해성사를 보러가는 일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에 관하여 엘리사벳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어머니가 끔찍이도 두려워했던 것은 잘 되지 않고 더 나쁘게 되어 그 사람을 화나게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왜냐 하면 그 사람은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의 기적으로 그는 좋은 쪽으로 받아들여 어머니에게 감사하면서 자신이 무척 피곤하다고 말했다. 필경 얼마 후에는 성사를 보겠지, 아직도 그는 무척 혼란스러워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엘리사벳의 낙천주의적 생각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들어났다. 카데츠 부인은 그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골마르 몽시뇰에게 가서 전도사 한사람을 샤삐 씨에게 보내달라고 청햇다. 리옹 수도원장이 가게 되어 엘리사벳은 안심을 했는데 샤삐씨의 응답은 단호하게‘노오“(거절의 뜻)였다. 개심할 뜻이 전혀 없었다. 결국 샤삐씨는 회심하지 않은 체 4년 후에 죽었다.
엘리사벳이 가르멜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3월 26일에 동생 기트는 엘리사벳의 성소에 관하여 어머니에게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카데츠 부인은, ‘엘리사벳 본인도 또 몽시뇰 골마르도 그 점에 대해 자기에게 아무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엘리사벳이 그런 생각을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점심식사 후 기트가 엘리사벳에게 가서 말했더니, 엘리사벳은 가르멜에 들어가려는 결심은 변함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결국 어머니는 앞으로 2년 동안도 그런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21살에 가르멜에 들어가게 해주겠노라고 승낙했다. 엘리사벳은 동생 기트를 남겨둔 채로 그 이전에 떠나가는 것은 양심상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카데츠 부인으로서는, 자신의 건강이 아직도 나쁜데 엘리사벳이 가르멜에 들어간다면 기트가 자신을 돌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아마도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엘리사벳이 훗날 일기에 쓴 글이다.
나에게 이런 은총을 내려주신 분은 성모 마리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나 는 전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울고 있는 그 두 사람을 보았을 때 나도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습니다. 예수님, 저를 부르시고 격려해주시는 분은 분명 당신이십니다. 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들에게 당신께서 팔을 내밀어주신 분도 당신이심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 가슴은 찢어질 것입니다. 저의 주인이시여, 당신께서 저를 원하시고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계심을 저는 압니다. 저는 제 눈물 속에서 조용하나마 엄청난 감미로움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곧 저는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가올 2년 동안 저는 당신에게 더욱 어울리는 신부(新婦)가 되고자 몇 배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 지 닷새 후에 엘리사벳의 가르멜 입회에 대한 카데츠 부인의 허락이 얼마나 마지못한 것이었는지가 분명해졌다. 부인은 엘리사벳을 위한 화려한 청혼, 엘리사벳의 앞날에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화려한 청혼을 받았다는 소식을 가지고 몹시 흥분하여 집에 돌아왔던 것이다. 어머니는 엘리사벳에게 말하기 전에 몽시뇰 골마르에게 갔는데, 몽시뇰은 엘리사벳에게 가서 알려주고 이로운 점을 모두 말해주라고 카데츠 부인에게 충고했다. 몽시뇰은 그것으로써 그 성소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엘리사벳의 성소를 시험해보는 좋은 테스트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엘리사벳에게 먼저 이야기하지 않고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엘리사벳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나는 왕 중의 왕께 내 마음을 바쳤습니다. 배반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엘리사벳은 일기에 썼다. 그날은 성 금요일이었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마음을 일기에 쏟아 부었을 뿐 아니라 시도 썼다.
십자가에 달리신 나의 사랑, 예수님,
당신의 십자가 아래서, 나는 당신께 다시 한번 청하옵나이다.
내 마음을 영원히 가지십시오.
천상의 배필이시며 거룩하신 구세주시여,
나는 이 생에서의 내 모든 행복과 모든 관계를 포기하옵니다.
오직 당신의 것이 되기 위함이옵고 사랑하기 위한 사랑을 당신께 바치기 위함이옵니다.
부활주일에 엘리사벳은 괴롭고도 즐거운 알렐루야를 노래했다. 결국 샤쀠씨가 신앙에로 되돌아오지 않아 그 전교임무가 끝났음을 엘리사벳은 슬퍼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좋으신 예수님, 저는 오늘 영광과 기쁨으로 울고 있습니다.
그 전교임무가 끝났기에 울고, 무엇보다 샤쀠씨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절망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주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제 기도가 지금까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제 간청과 제 모든 고통이 당신의 마음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씀하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위로가 됩니다만, 저의 배필이신 당신께서 괴로워하고 계시는데 제가 어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전교임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회심했는지를 아시면 당신은 기뻐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활 축일을 좀 덜 슬프게 지낼 수가 있습니다. 저는 당신 마음의 기쁨에 제 자신을 맞춥니다.
이 아름다운 날엔 목자이신 당신께 되돌아온 저 잃었던 양들만을 생각하소서.
그리고 아울러 엘리사벳은 그토록 기다렸던 어머니의 허락, 가르멜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직도 2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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