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다

십자가 성녀 데레사 베네딕다 여정 (11)

할미 아녜스 2018. 10. 13. 15:01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다의 여정(5)

(이 글은 유대교로부터 무신론으로 옮긴 우리 시대의 한 여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예수의 여성제자요,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딸인 한 여인에 대한 회고로, 1998년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다(에디트 슈타인)의 시성식을 맞이하여 로마 가르멜 총본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2. 십자가의 길을 따라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

예수를 따르는 일의 한 가지 특색은 분명코 십자가와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이였는데

이것은 예수를 따르는 일에서 연유하는 하나의 사실인바 이는 에디트 슈타인의 그리스도론적 경험의 강력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처음부터 에디트는 생각하기를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성부에게조차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매달리신 불쌍하게도 굴욕적으로 십자가 형벌을 받은 자"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문을 인류에게 열어주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평생토록 고통으로 죽고 매일 자아부정(自我否定)으로 죽고 심지어 필요한 때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필요한 때에는 피로 물든 순교의 죽음까지도 해야 할 것입니다".

매일의 삶 안에서 이렇게 십자가를 견딤으로써 에디트는 서서히 "십자가학(學)"을 터득했고 그리하여 자신의 마지막 철학 저술을 그 표제(表題)로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유형적으로는 끝내지 못한 저술이 되었다.

에디트는이론(理論)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실체적 진리, 즉 순교의 십자가를 택함으로써 그 저술을 끝맺었던 것이다.

이 순교는 인간이라는 가련하고 유한한 존재가 파란만장한 삶과 희생으로 그리고 시련과 유혹과 함께 살아가면서 질병, 메마름, 단조로움 및 존재상의 공백을 받아들임으로써지게 되는 십자가를 통해 마련되었다.

십자가는 모든 힘들고 답답한 것의 심벌이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음에의 여행과 같은 것이라고 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은 이 점을 날마다 져야할 운명인 것입니다.“

에디트는 그리스도의 의미와 연관해서 사랑의 십자가, 속죄의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찾아냈다.

그리스도는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고 그러므로써 유대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이 사실이 인류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표지가 된 것이다.

이것이 이웃을 힘닿는 데까지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힘의 원천이다.

우리의 십자가와 고통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부활의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에서 그런 것들을 다루는 일이다.

고통 받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또한 생명과 부활의 확실성을 지니고 인간의 희망과 환희, 슬픔과 고민에 참여하는 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거칠고 힘든 삶의 길을 걸으며 괴로워하는 모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그들과 친교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선과 사랑이 승리한다는 확실한 희망을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고통받는 구세주를 생각하여 힘든 운명을 지고 왔거나 자유로이 선행을 해온 각자가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의 죄라는 엄청남 짐을 얼마쯤 덜었고 주님을 도와 자신의 짐을 졌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간의 한계라는 십자가, 고통과 싸움이라는 십자가, 고통받는 이들과의 일치라는 십자가, 정의와 평화의 세계를 위해 일한다는 십자가 등, 이른 바 삶의 십자가를 받아 들임으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전념하는 하나의 모델을 에디트 슈타인 안에서 발견한다. 에디트의 삶은 우리가 볼 때에는 예수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는 바오로 사도의 경험으로 요약된다.

그 이유는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들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1고린 1:18)이기 때문이며,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필립 3:7-8).

 

IV. 예수의 데레사의 딸이요, 십자가의 성 요한의 딸인 에디트 슈타인 그리스도에로 귀의한 후 에디트 슈타인은 가르멜 안에서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수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러나, 에디트는 교직(敎職)도 사도직상 중요하다는 지도교수의 말에 따라 데레사적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미루었다.

11년여를 지낸 후에야 에디트는 기도를 통한 식별 중에 그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때가, 즉 가르멜의 묵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칠 때가 왔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에디트는 자신의 삶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하느님 계획의 일부를 이루고 있고, 하느님만이 그 의미를 완전하게 알고 계시며 그 계획의 일부가 지금 인류의 화해를 통해 드러나고 있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했다.

"교직을 떠나는 것이 제게는 하느님의 계시였습니다. 오랫동안 저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길을 이제는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하느님의 계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저는 맨발 가르멜 수녀원에 지원했고 일찍이 저에게 귀의하도록 영감을 주신 데레사 성녀의 딸이 되었습니다."

 

1933년10월14일에 21명의 수녀가 있는 가르멜 쾰른 수녀원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