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마원성지에 가다

할미 아녜스 2019. 5. 26. 17:37

 

5월 23일 (목요일) 본당 "성소자를 위한 기도 모임"에서

경상북도 문경에 있는 마원 성지로~~~

성지 순례를 다녀 왔습니다.

사진과 함께 순례일정을 올릴까 합니다.

 

성지 입구에서 우릴 기다리고 계신 성모님을 만났다.

마원성지를 알리는 표지판.

약간의 오름길, 그리고 몇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이 순교지의 주인이신 복자 박상근 마티아(1837~1867)묘지가 있다.

 

마원성지는 백화산(1063.5m) 자락인 마원1리에 위치해 있으며,
1983년 안동교구 김욱태 신부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박성근(마티아. 1837~1867)의 묘를 박씨 문중산에서  찾아내어 성지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또한 1996년 10월 프랑스 선교사였던 칼레신부와 순교자 박성근 마티아의 동상을 설립하였다.

특히 이곳은 백화산 중턱의 힌대미 교우촌을 거처 백화산 너머 한실 교우촌까지
박상근 순교자와 칼레 신부가 박해를 피해 넘나들었던 길을 따라 도보순례 코스도 마련되어 있다.

신부님께서 복자 박상근 마티아에 대한 간단한 소개의 말씀이 계셨다.

십자가의 길 기도 ~~

숨이 차다 ~

차에서 내리는 동시에 성지에 오르고 , 그리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시작~~~

숨을 고르기 바쁘게 기도를 한다.

대단한 능력자들만 왔으니....

순례~기도이다...

 

기념 찰영~~찰칵찰칵~

덕계의 미인들만 뽑혀서 왔다...

 

칼레, 아돌프 니콜라 (Calai,Adolphe-Nicolas. 1833~1884)

칼레신부는 프랑스 출생이고, 파리 외방 전교회소속으로 1860년 사제서품을 받고

조선 선교사로 임명 되어

1862년 미리내로 파견되어 경기 남부 지역 사목을 담당하였고,

1866년까지 3년동안 경상도 서부지역에서 전교 활동을 벌였다.

칼레 강신부님의 훈계는 당시 신앙을 받아들인 우리 선조들의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본다.

본래 박상근 마티아는 문경에서 아전(하급관리)을 지낸 사람으로 중년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교리를 잘 지키며 착실하게 생활 하였으며 이웃에게도 교리를 가르쳤다.

박상근 마티아는 '신앙심이 아주 강했다'고 칼레 강 신부님이 기록하고 있다.
.
박상근 마티아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집에 은신케 하고 피신 시켜 보호하였으며,
병인박해 당시 칼레신부님과 함께 행동하겠다는 뜻에 칼레신부님의 돌아가라는 명령에도
“신부님과 함께 죽겠습니다.”라고 하였으나

칼레신부님의 순명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이별을 고하고 숨어 지내다
1866년 겨울 박상근 마티아 외 40여명이 체포되어 상주,

대구등지로 압송되어 고문과 혹형으로 여러분이 순교 하였다.
 문경현으로 잡혀 온 마티아는 친분이 있던 문경현감의 배교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내 배교하지 않음으로서 상주목으로 이송되어
1866년 12월21일 나이 서른에 순교하였으며,하느님의 종 112위로 있다가

 2014년 8월 16일 프린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 되었다.

 

오늘 성지를 방문한 우리 교우들은 복자 박상근 마티아의 장한 믿음을 배워 가야 할것이다.

칼레 강 신부와 박상근 마티아에 대한 우정은 오늘날에도 참된 우정이라 회자되고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마티아는 3일간 칼레신부를 자신의 집에 숨겼다.

위험이 닥치자 칼레 신부는 이웃에 있는 "한실'교우촌으로 옮기겨 되었다.

마티아는 위험속에서 알지도 못하는 산길을 가는 신부를 계속 따라가게된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손짓하는 칼레 신부와 께속 따라가겠다는 마티아간의 우정의 실랑이는

칼레신부의 강한 명령에 서로 악수를 나누고 갈라서게된다.

마티아는 그 후 체포되어, 배교하라는  휴혹을 가감히 떨치고 나이 서른에

마을의 교우 30여명함께 충주, 상주, 대구 등지로 압송돼
갖은 고문과 혹형을 당한 끝에 순교하였다. 

칼레 신부는 병인 박해로 인해 전교 활동을 중단하고 중국으로 피신했다

칼레 신부는 중국에서 "순교자 전기"등을 파리본부로 발송하였고,

병인 박해로 얻은 병으로 인해  1869년 본국으로 돌아가 트라피스트 수녀원의 지도 신부로 활동하다

1884년 5월 22일에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

임종 때 조선의 신자들을 위해 기도 하셨다고 전해 진다.

남긴 저서로는 필사본 "강신부의 훈계"가 있다.

우리가 방문한 바로 오늘이 칼레강 신부의 '기일' 일수도 있겠다.

문경 지방에 천주교가 전래하게 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 후 충청도 지방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고향과 가산을 버리고 찾아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영남 북부의 험준한 산악지대는 눈을 피해 은신하기에 적합했다.
문경, 한실, 여우목, 건학, 부럭이 등 이러한 곳들은
신앙의 선조들이 화전을 이루며 교우촌을 형성하고 살았던 유서 깊은 장소들이 있다.

문경!

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만큼 험한 고갯길이었다.

해발 1천 17미터,

새재는 그 옛날 박해를 피해 산으로 산으로 깊숙히 숨어 들어야 했던 슬픈 탄식이 서려있다.

충주에서 문경, 괴산에서 제천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올라야 하는데 새재는 영남의 관문이었다.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옆으로 난 길, 옛길은 그대로 인가!

이곳은 드라마 찰영지이다.

옛 날에 왔을 때는 드라마 왕건을 찍고 있었는데...

지금은 7월에 방영될 작품이란다.

별로 관심이 없어 알아보지는 않았다. 만

이곳도 많이 발전됐다.

많은 기와집과

서울에서만 볼수 있는 광화문,

긍정전인가? 왕의 집무실도...

앉아서 사진을 찍기만 하면 3,000원을 달란다.

가난한 순례자는 귀경만으로 만족하다....

 

 

 

 

 

 

 

순례는 기도이다 .

열심히...

하느님 보기에 예쁘게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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