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향기

「김 추기경 자료집」을 살펴보다

할미 아녜스 2020. 9. 3. 16:55

전국에 흩어져 있던 김 추기경 유물 250점 꼼꼼히 정리 한 자료집 정리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서울대교구 200년 역사를 정리하며 첫 번째 자료집으로
서울대교구 설정 200주년 기념 「역대 교구장 유물 자료집 김수환 추기경」
(이하 「김 추기경 자료집」, 사진)을 발간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김 추기경 유물 250점을 기념 상본, 성직자복, 칙서, 인장, 문서,
친필 등 14개 항목으로 나눠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세례대장과 견진대장, 유서, 여권, 강론 원고 등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들도 많다.
서울대교구 문서고, 대구대교구 사료실, 마산교구 사무처 등을 비롯해 10개 기관에서
김 추기경 유물 자료를 제공했다.
감수는 서울대교구 전례위원회 위원 김종수(잠실7동본당 주임) 신부가,
자료 번역은 패트릭 맥 뮬란(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신부가 맡았다.

 

첫 제의 (1951, 김수환 추기경 기념관 소장)

첫 제의는 꽃무늬가 있는 백색 직물 바탕에 꽃과 밀 이삭이 수 놓여 있다.

 

세례대장(1922, 대구대교구 사료실 소장)

김 추기경은 1922년 7월 25일 대구성당(현 계산동 주교좌성당)에서 대구대목구 부주교
베르모렐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세례대장(No.23750)에는 “남산동에서 7월 2일(음 5. 8) 김요셉과 서마르티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세례명은 스테파노, 대부는 이베드로”라고 기록되어 있다.<붉은 점선 안>

 

견진대장(1922, 대교대교구 사료실 소장)


김 추기경은 1922년 7월 25일 유아 세례를 받은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9월 8일 안 드망즈 주교에게 견진성사를 받았다.
견진성사를 받은 곳은 대구 남산정본당이라고 적혀 있는데 현 계산동 주교좌성당이다.
대부는 류바오로이고, 당시 사는 곳은 달성군 수성명 대명동으로 나와 있다.
그 시절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때라 태어나자마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이어서 견진성사까지 받게 했다.

 

사제수품 기념 상본(1951,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

성찬례와 어린양의 목자인 예수 성심 성화가 그려져 있다.
뒷면에는 사제 서품일(1951년 9월 15일)과 첫 미사 일정, 수품 성구가 적혀 있다.
사제 서품식은 대구대성당(현 대구 계산동주교좌성당)에서,
첫 미사는 성요셉성당(현 대구 남산성당)에서 했다.
첫 사목지는 안동본당(현 안동 주교좌목성동본당)이었다.

 

팔리움과 팔리움 수여 사진
(1969,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팔리움, 서울대교구 사무처 문서고/사진)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가 목과 어깨에 둘러 착용하는 띠로 양털로 만들었다.
교황청과 일치를 보여주는 외적 표지다.
팔리움에는 여섯 개의 십자가가 수놓아져 있는데 네 가지 덕행(정의, 용기, 절제, 예지)과
마르타의 활동적인 삶, 마리아의 관상적인 삶을 상징한다.

사진은 김 추기경이 추기경에 서임된 뒤 1969년 4월 29일 바티칸
성 마틸다 경당에서 바오로 6세 교황에게 팔리움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의 성작과 성반(1967,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

바오로 6세 교황이 1968년 김 추기경(당시 대주교)에게 선물한 성작과 성반이다.
김 추기경은 1968년 10월 6일 바티칸에서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식에 참석하고
다음날 바오로 6세 교황을 특별 알현했다.
이때 교황은 김 추기경에게 자신의 성작과 성반을 선물했다.
성작 받침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와 바오로 초상,
바오로 6세 교황의 문장이 장식돼 있다.
성반에는 비둘기와 백합, 초승달,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새로 선임된 추기경 명단이 실린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회보
(1969, 서울대교구 사무처 문서고 소장)

김 추기경 이름은 20번에 실려 있다.<사진 붉은 점 부근>
명의 본당 이름인 ‘산 펠리체 다 칸탈리체 첸토첼레’가 나란히 적혀 있다.
김 추기경은 당시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이었다.
독일 유학시절 김 추기경 스승이었던 회프너 추기경(23번) 이름이 눈에 띈다.

유서(1970~1971, 서울대교구 사무처 문서고 소장)

장기간 부재 혹은 죽음을 대비해 작성한 친필 유서다.
1970년 1월 16일, 10월 19일, 1971년 2월 21에 작성됐다.
교구장직 대행 요청, 바티칸에 신변 처리 문제 요청의 내용이 담겨 있다.
1971년에 쓴 유서에는 김 추기경의 겸손과 사랑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행렬용 추기경 카파 (1966,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소장)

 

카파는 특별한 예식 때 주교나 추기경이 입는 소매가 없는 외투 형태의 긴 옷이다.
김 추기경은 1969년 5월 20일 추기경 서임 경축 미사에서 이 카파를 입고 입장했다.
추기경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카파를 거의 착용하지 않는다.

 

-이 게시물은 카톨릭 평화신문 박 정수 기자 님께서 등록한 글을 옮겨 왔음.-

 지난 2월 16일 평화 신문에 게제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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